플랜B

이 년 가까이 잘 피했던 코로나에 결국 걸렸다. 그동안은 외부활동이 거의 없어 걸릴 일 자체가 별로 없었다. 최근 어쩔 수 없이 집 밖에서 활동을 해야 했는데, 오래전 맞은 백신 한방으로 막기 어려웠던 것 같다.

올해 마지막 여행으로 떠난 강원도에서 몸에 이상을 느꼈다. 목 디스크 여파라고 생각해서 아쉬움에 계류도 억지로 타며 버텼는데, 마지막 날엔 아침도 거의 못 먹고 출발해야 했다. 평생 처음 느껴보는 몸 상태로 운전해 겨우 돌아와 체온을 재니, 붉은 경고등과 함께 사십도가 찍혀있다.

코로나 확진 뒤 격리 생활은 인후통이 겨우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심했던 것 말고는 큰 문제 없이 지나갔다. 지금은 격리도 풀리고, 통증도 거의 없지만 묘한 후유증이 남았다. 너무 피곤하고 졸립다. 지난 반 년 동안 거의 잠을 못 잤는데, 지금은 견딜 새 없이 잠들어 버린다. 몸이 이제 한계라고 판단한 것 같다. 그 덕택인지 집 나간 정신도 좀 돌아오고 있다.

올 한해 내내 벼랑에 매달려 외줄만 탔는데, 마지막 달이 되어서야 이러다 다 죽는다는 판단이 섰다. 나도 모르게 썼던 눈가리개를 벗었지만 결과가 어떨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래도 운신의 폭이 조금 더 넓어진 것 만으로도 마음이 편하다. 코로나 덕이라는 얘기를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장마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린다. 오늘부터 장마라는 뉴스를 본지 보름은 된 것 같은데, 정작 비 온 날은 며칠 되지 않는다.

장마에 관한 어떤 인디 가수의 노래가 생각나서 십 수년 만에 들었다. 이십 년 전, 이 가수의 노래에 얽혀 일어났던 일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우연과 우연이 겹쳐 바람이 이루어 졌지만, 난 그것을 지속시킬 능력도 없었고,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목적지를 잃고 시작된 표류는 결국 지금껏 지속되었고, 그게 나의 인생이 되었다. 다시 키를 잡아 보려고 애를 쓰기도 했었지만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고, 조타실 문 밖에 주저 앉은 중년의 알콜 중독자만 남았다.

그 때에는 오히려 세련되게 느껴졌을 이 앨범의 lo-fi한 음색이, 상처난 필름 같은 내 기억들과 머릿속에서 얽혀 시신경을 짓누른다.

마실

아트페어에 걸린 S의 그림을 보러 아침부터 성수동에 갔다. 요사이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동네라고 하던데, 처음 방문했다. 전시장은 잠깐 머물고 나와 그 동네 주변을 걸어보았다. 낯선 동네에 낯익은 풍경들이 널려있다. 서촌, 익선동, 을지로, 그리고 또 다른 오래된 거리들에서 보아온, 비슷비슷한 모습의 새로 들어온 가게들이 기존 골목과 이질적으로 섞여있는 풍경이 여기도 연출되어있다. 저런 모습이 유지될지, 새로운 것들이 과거의 모습을 잠식할지, 아니면 잠시 머물렀던 금니가 빠져버린 입속 모습으로 남을지,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영영 낯선 동네일 것 같다.

K와 점심이나 먹으려 연락을 해 보았지만 답이 없어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날이 좋아 좀 걸을 요량으로 을지로 입구에 내렸다. 집가는 길에 송화단을 사러 북창동을 들렸다. 항상 가던 가게가 없어졌다. 아직 남은 중국식자재상이 있어 한 상자 살 수 있었다. 이곳도 느리지만 변해가고 있다.

남대문시장에서 칼국수나 한그릇 먹고 들어가려 했지만 역시나 길을 잘못 택해 집앞까지 왔다. 강남역 앞에서 2년 사는 동안 내내 그 지하상가에서 항상 방향을 잃었던 내가 남대문시장의 미로를 풀기는 어려워 보인다. 어딘지 몰라서 두리번거리는 재미는 내내 즐길 수 있겠다.

그래서 저번 그 중국집에 다시 갔다. 다시 짜장면을 주문했고, 알게되었다. 아이고, 그냥 흔한 짜장면이다. 익숙한 몸상태로 두 번만에 익숙해진 그 짜장면을 먹고, 내일 놀러올 친구들에게 대접할 삼겹살 세 근을 익숙해질 정육점에서 사서 집에 왔다. 나이 들수록 적응이 힘들다는데, 나는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동네만 잘 찾아다니는 것인지, 알게 모르게 적응형 인간으로 바뀌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사

충정로에서 회현동으로 이사왔다. 먼 거리가 아니기에 큰 가구 말고는 내가 직접 차로 짐을 옮겼다. 월요일 부터 사흘간 왕복을 반복하니 힘에 부친다. 짐이 많아진 것인지, 내가 늙은 것인지, 이 년 전 보다는 훨씬 힘든 것 같다. 지하 주차장에서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하기에 더워 반팔만 입고 일했는데, 저녁에 다시 일하기 위해 장비를 충정로에 놓고 나와보니 춥다. 어차피 옮겨야 할 패딩이 있었지만, 입고 나서면 걸인 꼴일 것 같아 그냥 나왔는데, 나만 꽃샘 추위에 옷 없는 거렁뱅이 모습이다. 버스를 타고 염천교를 건너 금방 회현역으로 왔다. 대로 뒷길을 통해 이사한 집에 오려 했지만 길을 잘 못 들어 본의 아니게 새 동네 구경을 했다.

남촌 어쩌고 하는 안내판들이 붙은 걸 봐서 조선시대에 남촌으로 불리던 동네인가 보다. 자연스럽게 발생한 오래된 골목들의 느낌이 서촌과 닮아 있다. 배고픈 김에 식사를 하기로 했다. 집과 가까운 곳에 중국집과 돈까스집이 나란히 있다. 고민하다 중국집에 들어갔는데 자리가 없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바쁜 중국말들과 함께 북적이는게 유명한 화상인 듯 하다. 나와서 돈까스 집으로 가려는데 붙은 테이블을 띄어서 자리를 마련해 준다. 유명한 메뉴가 있는지 짜장면 먹는 테이블은 없지만 난 짜장면. 금방 나온 내 식사는 항상 내 머릿속에 있는 짜장면의 모습이었고, 맛 역시 아주 어릴적 부터 기대하던 짜장면의 맛이었다. 그게 좋았다. 그래서 정말 맛있었다. 오랜 기간동안 쌓아져 와 중국집을 가기 전, 젓가락을 들기 전 기대하는 맛은 분명 내 뇌와 미뢰에 각인되어 있지만, 이를 충족해 주는 짜장면은 오랜기간 만나지 못했다. 오늘 먹은 모양새도, 꾸미도 너무도 평범했던 육천원짜리 짜장면은 그 기대를 완벽히 보답해 주었다. 입장한 지 십 분도 안되어 나와 골목길을 보니 괜히 정겹고, 이 동네가 마음에 든다. 이사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좁은 서울 구도심 안 이기에, 충정로 보다 조용한 주거지를 바란 기대 말고는 이 동네에 대한 별다른 관심이 없었는데, 짜장면 한 그릇으로 애착이 생기는 것 같다. 다만 요사이 며칠 끼니도 못 챙기며 노동했던 내 몸과 혀의 상태를 감안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조만간 한가한 시간에 다시 가 봐야겠다.